|
미개발지인 도심의 변두리에 터를 잡은 적이 있었다. 경계 너머에 논이 연결된 시골풍의 마을이었다. 울타리도 없는 집이었다. 수컷의 흰둥이인 어린 잡종견을 집 마당에 들였다. 성견이 되니 마을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목줄로 묶어 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왔다. 약간 진황색의 잡종견이다. 그리고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 신혼 방을 집 마당 구석의 애인의 처소에서 차린 것이다. 주인의 허락 따위는 필요 없었다.
특이한 것은 그녀는 행동이다. 스킨쉽을 결코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다가가면 몇 걸음 물러서는 것이다. 아마도 깊은 아픔이 있는 듯하다. 한 동안 먹이만 주면서 그냥 두었다. 무심한 그녀였지만 새 신랑 앞에서는 애교 만점이었다. 과감한 애정행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의 몸이다. 신랑은 목줄에 매인 몸이었다. 이런 역경조차 그들의 사랑에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그렇게 겨울 한 계절을 보냈다. 그리고 출산을 한 것이다. 다산에 순산이었다. 무려 9마리의 새끼를 낳은 것이다. 명색이 이 몸도 한방 산후 전문가이다. 소고기와 미역국은 당연했다. 한약이 들어간 산후 보약도 다려주었다. 수유 방으로 적당한 새 집도 철물점에서 사왔다. 안에 모포를 깔아서 아늑하게 해주었다. 보답하듯 그녀의 모성애는 상상을 초월하였다. 수유와 육아에 헌신하는 것이었다.
새끼들이 조금씩 꾸물거리던 어느 날이다. 퇴근하여 어두워진 밤,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새끼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녀도 안 보인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들판의 족제비가 물어갔나? 아님 다른 개들이 살상을 했나.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도 목줄에 매인 신랑만 태평이다. 황당하고 낙담과 걱정이 교체한다. 어둠 속에 무심한 들판은 물오른 개구리들의 떼창만이 요란했다.
한참을 찾아 헤맸다. 개구리 소음에 몰랐다가 어디선가 새끼들의 낑낑거림이 들려온다. 살펴보니 새로 들인 개집의 뒤편이다. 돌아봐도 없다. 그런데 개집의 바로 아래 땅 구덩이 속에서 들려온다. 아니 저런 굴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이지. 놀라웠다. 그녀가 굴을 판 것이다. 저 정도 굴을 파려면? 상상이 안 간다. 산후에 약해진 앞발로 발톱을 상해가면서 땅을 해 집었어야 한다. 아마도 보름 정도는 족히 걸렸을 것이다. 왜 그녀는 아늑한 수유 터를 포기했을까?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다. 뭐가 잘못되었지? 그런데 그녀의 입장에서 살펴보니 점차 이해가 되었다. 피나는 노력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더위 때문이었다.
기온이 올라가고 있었다. 수유방인 양철판의 새 집도 내부 온도가 올라갔으리라. 새끼들이 그대로 그 더위에 노출되었을 터이다. 어미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집 밑의 땅 속에 굴을 판 것이다. 땅속에서 새끼들의 체온을 식히려 한 것이다. 그녀의 지혜에 그저 감동을 넘어 경외심마저 들었다. 동물에게조차 배울게 많다.
체온의 중요성은 모든 생물들의 생존의 기본 조건이다. 인간도 예외는 없다. 불과 2도의 체온차이로도 인간은 생명이 위태로워 질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체온이 중요한 초기 지표로 여겨진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체온은 염증이나 대사의 불균형으로 올라갈 수 있다. 환경적인 원인이나 먹는 식재료조차 영향을 미친다. 수면과 운동 등의 일상생활 모두가 체온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
봄을 느끼자마자 바로 여름이다. 더위는 일상의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나른해지면서 권태감과 무력감이 늘어간다. 자칫 리듬이 깨지면서 건강을 해치게 된다. 더위에 대한 건강관리를 중에 하나가 특별한 요리나 음료, 또는 탕약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조상들로부터 더위를 이기는 다양한 요리와 음료 등이 전수되는 이유이다.
한의학에서는 생맥산生脈散이란 한약을 추천한다. 인삼, 맥문동, 오미자를 합해서 달여 낸 탕약이다. 더위로 지친 심장의 리듬을 회복하고 갈증을 해소한다. 전해질을 보충하며 혈류순환과 신진대사를 활성화 시킨다. 여름철 기력 회복에 최고의 명약이다.
그녀, 견공의 예나 더위의 계절에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체온을 잘 관리하시길 빈다. 건강의 시작이자 생존의 필수조건, 체온 관리이다.
/글=안수기(그린요양병원 대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