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생각]
바둑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드게임이다. 가로세로 19줄의 바둑판 위에서 흑백의 돌을 번갈아 놓으며 승부를 가린다. 361개의 교차점에 돌을 에워싸 빈칸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경쟁한다. 이 공간을 집이라 하는데 집을 더 많이 만든 사람이 승리한다. 승패가 매우 단순 명료하다.

이 같은 단순함에도 바둑은 가장 심오한 게임이고, 명실공히 인류가 낳은 가장 높은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게임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돌을 따내는 규칙, 착수 금지 및 패의 규칙, 계가 공식(집을 세는 것)이 사실상 규칙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간단하지만 경우의 수가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20일에 비로소 바둑판에서 배치가 가능한 수가 계산되었는데, 대략 10의 171제곱의 수라고 한다. 무한대라 해도 무방하다.

체스나 장기 등 다른 보드게임은 특정한 말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바둑은 361칸 중 이미 돌이 놓인 곳과 착수 금지 점을 제외한 모든 곳 중 하나에 돌을 놓을 수 있으니 그 경우의 수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바둑은 다른 보드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는 집이라는 게 있는데 이 집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이해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답을 찾아가는 게임이 아니라 안목을 넓혀가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모든 상황에 대해 완벽하게 최선의 답을 찾아낼 수 없으며 숙련된 감각을 통해 최선에 가까운 수를 두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수담(手談)이라고도 불리는 바둑의 기원은 수천 년 전이라 한다. 중국 고대 요임금이 망나니 아들의 수양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4천370여 년 전이다. 그러나 요 임금 자체가 신화적인 요소가 강한 만큼 이를 액면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를 배제하고 기록에 의존하여 보면 적어도 춘추시대에 바둑이 존재했다. 무려 3천 년 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바둑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들은 고구려 장수왕이 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내 바둑을 두게 하면서 백제를 염탐하였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소 1천600여 년은 묵은 게임이라는 이야기다. 신라 효성왕(738면) 때는 당나라와 바둑 교류를 했다는 기록도 있고,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바둑이 성행해 궁녀들도 취미로 바둑을 많이 뒀다고 한다.


바둑의 옛 어형은 ‘바독’이었고, 방언으로 ‘바돌’이라고도 했다. 이는 돌(石)의 옛말과 관련이 있는데, 실제 우리 전라도에서는 지금까지 ‘돌’을 ‘독’이라고 쓰는 곳이 있다. 바둑의 ‘바’는 밭(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바둑판의 줄이 마치 경작한 밭처럼 보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고 바둑에서 집을 짓는 모습이 밭담을 쌓는 것과 닮아서라는 주장도 있다.

바둑을 둘 때 마음에 새겨야 할 열 가지 교훈이 있는데 이를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 한다. 바둑의 십계명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너무 이기려고만 하지 말라는 뜻의 부득탐승(不得貪勝)과 상대를 공격하려 할 때는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의 공피고아(攻彼顧我)라는 말은 바둑판에서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도 늘 새겨야 할 격언이다.


361칸의 반상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 중 백미는 묘수다. 위기에 몰렸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고 전세를 역전시키는 절묘한 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같은 묘수는 진정한 고수들의 기전에서 가끔 볼 수 있다. 반면 아마들은 묘수가 아닌, 꼼수로 위기를 극복하려 한다. 물론 스스로는 이 꼼수를 묘수라고 우긴다. 이는 어쩌다 상대를 속여 일시적인 이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충수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1990년대까지도 큰 인기를 얻었던 바둑이 컴퓨터 게임 등 다른 오락거리에 밀려 젊은 층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동네에서 기원이나 바둑학원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지만, 대한민국 국회에서 최근 바둑판보다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소위 ‘검수완박’ 대전이다. ‘사보임’ ‘법사위 안건조정위’ ‘위장 탈당’ ‘중재안 합의’ ‘합의안 파기’ ‘필리버스터’ ‘살라미 전술’ 등등 기기묘묘 한 수들이 난무하고 있다. 여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필살기를 펼쳐 보이며 죽기 아니면 살기식 수상전을 벌이고 있다. 다만, 현란한 머리 회전으로 그들이 펼쳐 보이는 수들은 고수들이 반상 위에서 벌이는 묘수 대결이 아니라 가히 ‘꼼수 대잔치’로 읽힌다. 관전자들의 재미와 흥미를 유발해 찬사의 박수를 끌어내기보다는 오히려 고개 돌려 외면하게 만든다.

묘수도 거듭되면 꼼수가 된다고 하고 꼼수는 반드시 자충수로 이어진다는 말이 있다. 자충수의 결과는 당연히 참담한 실패로 귀결된다. 꼼수를 넘어 자충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여야가 머지않은 미래에 어떠한 결과와 맞닥뜨릴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