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생각]
"그들은 한낱 용병에 불과하다. 던져주는 대가에 목을 매고 고용하는 자의 요구를 충실하게 따른다. 그 요구를 넘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부르는데도 주저함이 없다."

특정세력에게 유리한 의제는 부풀려 선전하고, 불리한 것은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고용인의 입맛에 맞게 여론을 만들어 갈 것인가가 촛점이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에는 간교한 속임수만 난무한다.

네이버 지식백과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스핀닥터(Spindoctor)'는 원래 정치홍보 분야 전문가를 일컫는 용어다. 홍보, 기획, 메시지 관리, 아젠더 설정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는 PR 전문가로 특정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의 대변인 구실을 한다.

그런 스핀닥터의 의미가 우리 언론의 현실을 비꼬는 속어(俗語)로 변용되고 있다. '돌리거나 비틀어 왜곡한다(스핀-spin)'는 부정의 뜻을 가진 채로.

저널리즘 원칙 따위는 애초에 없고 특정 정파를 위한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데만 골몰하는 뒤틀린 언론의 한 양상을 멸칭(蔑稱)하는 스핀닥터는 1984년 10월21일 뉴욕타임스가 사설에서 공식 인용했다.

스핀닥터의 효용을 최대로 끌어올린 이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제 42대)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적 인물. 미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해 역대 대통령 중 퇴임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그에게는 마리화나와 병역, 불륜 스캔들이 꼬리표 처럼 따라 다녔다.

특히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 스캔들(일명 지퍼 게이트)로 탄핵 소추까지 당했지만 스핀닥터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이를 극복하고 재선에 성공하기까지 했다.

우리에게 스핀닥터가 선을 보인건 2018년 18대 대선 때다. 미디어오늘은 그해 대선 여론을 "'보이지 않는 손'인 스핀닥터들이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 때 탄생한 종합편성 채널(2009년 7월 22일 방송법•신문법•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IPTV법)에 근거)이 활성화되면서 스핀닥터 논란은 비등해졌다.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대기업과 신문재벌의 융복합(?)산물이라 할 종편은 기존 지상파 방송에 맞먹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됐다. 거대 자본의 언론시장 장악과 독과점은 또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스핀닥터를 양산해 냈다.

김관규 교수(동국대 신문방송학과)는 18대 대선의 미디어 보도 가운데 주목할 현상으로 스핀닥터들이 각종 현안을 분석하고 전망을 내세우며 종편채널을 점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전의 지상파 방송에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고려했지만 종편채널은 최소한의 저널리즘 관행과 가치에 구애받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명시적으로 내세운 패널(스핀닥터)들이 이 종편, 저 종편을 넘나들며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를 파괴하고 있음을 성토한 것이다.

김 교수의 지적에 덧붙여 그들은 때로 애매하다 싶으면 빌어먹을 양비론(兩非論)으로 그들의 궤변을 합리화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올드(레거시) 미디어로 분류되는 일부 지면 매체들의 정파적 맹종도 이에 못지 않다. 그들로 부터 유래한 종편 채널들의 장구 두드리기에 호흡 맞추듯 북을 치는 행위는 볼만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3월 치러진 제20대 대선과 관련해 회자됐던 '기울어진 언론 지형'이라는 용어는 그런 행태를 단적으로 웅변해준다. 아니 대선 이후에도 언론의 기울기는 바로 잡히지 않은채 물구나무 서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는 '공익에 근거한 사실 확인과 객관적 보도'라는 불변의 가치인 저널리즘 원칙을 부정하는 행위다. 매체 소비자의 필요나 관심과 동 떨어져 정파적 의도에 따라 뉴스를 가공하고 편집 원칙 마저 왜곡시키는 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와 가치를 지워버리는 요인이기도 하다.

특정 미디어의 특정한 요구에 걸맞게 길들여지는걸 넘어 때로 야합을 일삼는 스핀닥터들. 그들의 맹활약은 역설적으로 공정의 가치를 전도시킨다.

전통의 올드 미디어와 스핀닥터, 각 포털 사이트의 불온한 움직임까지 이런 식이라면 정보의 왜곡, 사실의 호도, 소구력없는 가짜 뉴스의 양산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바로 사회 일반의 건전한 의식 형성을 방해하고 공정과 상식을 일그러 뜨리는 일에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