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생각]
지난 주말은 전주에서 보냈다. 가까운 도시라 여겼지만 참 오랜만에 발길을 들였다. 가족과 함께 한 길이라 더욱 즐겁고 꽉 찬 하루 일정이 되었다. 우선 한옥마을 부근을 찾게 되었는데 그 주변을 둘러보니 단박에 전주의 핫 플래이스임을 느끼게 했다. 거리마다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외지인 관광객들도 북적 거렸다. 장마 끝 무더위는 기승을 부렸지만 모처럼 도심의 2층 오래된 카페에 앉아 인절미 팥빙수로 더위를 식히는 것도 짧은 낭만꺼리가 되었다.

시간에 맞춰 우리 일행은 전주객사 풍패지관(豊沛之館)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이 전주에 간 진짜 이유는 ‘2022상설공연 전주 조선팝’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 공연은 전주시가 주최해 6월부터 7월까지 매주 토요일 마련한 상설 프로그램의 하나다. ‘조선팝’은 전주시가 소리의 고장답게 의욕적으로 들고 나온 신개념의 공연콘텐츠로 요즘 뜨는 국악계 스타와 젊은 뮤지션들의 참여로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조선’과 ‘팝(POP)’을 합성하여 만든 ‘조선팝’은 말 그대로 국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접목시킨 새로운 장르의 문화콘텐츠 창출을 지향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공연장소 풍패지관은 전주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객사, 즉 외부 손님들이 묵었던 숙소로 쓰인 한옥건물. 각기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크기를 가진 박공지붕 건물과 팔작지붕 건물이 붙어 있는 보물 제583호이다. 이곳이 조선왕조의 발원지라는 뜻의 ‘풍패지관(豊沛之館)’ 현판이 걸려 있듯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유서가 깊은 장소로 통한다.
이날 참가한 공연팀들은 풍패지관 건물을 배경으로 앞마당에 객석을 깔고 마루를 무대삼아 야외 현장공연을 진행하여 한여름밤을 수놓는 조선팝의 향연을 펼쳤다.

특히 첫 순서를 장식한 ‘악셀밴드’는 판소리, 거문고, 피리, 베이스, 기타, 신디사이저, 드럼 등 7인으로 구성된 젊은 창작음악그룹. 국악을 중심으로 클래식, 재즈, 대중가요, 세계음악 등 다른 장르와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가는 요즘 뜨는 신생밴드로 소개되었다.
지난달 11일 광주문화재단 주최 전통문화관 공연을 통해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던 악셀밴드는 이날 창작곡 ‘난봉가’, 뺑덕어멈을 주제로 한 ‘SAVAGE’, 춘향전의 ‘어사출도’와 ‘사랑가’ 등 젊은 감성으로 새롭게 해석한 우리 국악의 가락을 선사해 또 다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2021년 창단해 본격 활동을 펼쳐온 악셀밴드의 ‘악셀’은 악셀레이터의 ‘전진하다’의 의미로 ‘樂sell’로 표기되기도 하여 즐거움을 선사하는 사람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연주와 창작을 통해 국내외에 국악의 매력을 알리는 앨범 및 콘텐츠 제작에도 힘쓰고 있어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는 뮤지션그룹으로 기억되었다.

이처럼 즐겁고 행복한 가족여행을 마치고 전주에서 광주로 돌아오는 밤길,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달려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 풍패지관 맨땅 객석에서 만난 예술가들이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시대에 활동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가 어려서는 예술영재로 각광받으며 특별한 교육과 레슨의 과정을 거쳐 기능을 연마하였을 것이고 유명 대학에 진학하여 자기 분야의 전공을 갈고 닦아 왔을 터. 그런데 현실 세계에 나와 예술가의 이름으로 선 무대는 겨우 처마밑과 마루바닥이라니. 그것도 치열한 경쟁과 검증을 통해 초청된 팀인데도 말이다. 광주전통문화관 토요상설공연의 무대 역시 그 명성에 비해 악기와 장비조차 제자리에 둘 수 없을 만큼 무대와 객석공간이 협소하였던 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미스매치로만 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시대 흐름에 맞게 대중의 취향을 저격할 킬러 콘텐츠로써 국악과 대중음악, 클래식을 접목한 새로운 대중예술 콘텐츠를 육성한다는 취지는 동시대인의 공감을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정말로 시대 변화에 맞도록 하여 지속성을 갖고 거듭 새로운 문화장르와 형태를 키워 나가려면 제대로 된 공연장부터 갖춰주어야 한다. 무대는 연주자를 돋보이게 하고 그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운 목소리와 악기의 선율을 극대화시키는 음향과 조명, 영상시설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객석과의 소통과 호흡도 고려되어야 한다. ‘새로운’ 예술영역을 만들어 간다는 기치를 내걸었으면 거기에 맞는 환경과 공간, 시설을 동시에 갖춰가는 것도 고민해 볼 대목이다.
풍패지관의 땅바닥 객석이나 전통문화관의 방바닥 객석도 관객에 대한 서비스로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음악과 민족전통 예술을 현대화하고 대중화한다고 하면서도 예술가와 관객을 어제보다 나은 차원으로 배려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기존의 쓰던 공간에 연주자와 관객을 밀어 넣는 것은 신발에 발을 맞춰 넣고 걸어가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런 측면에서 광주문화예술회관이 주관하여 화~일요일 오후 5시 광주국악상설공연을 여는 상무지구 광주공연마루는 하나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광주광엑스포 세미나실을 리모델링하여 국악 전용공연장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연주자와 관객들이 만족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되었다.

국악의 본고장을 자처하는 호남의 큰 도시 광주와 전주가 나란히 이처럼 주말 국악상설공연을 하고 전주소리축제와 임방울국악제 등을 개최하여 국악발전과 대중화, 예술인재 키우기를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정책임은 분명하다. 여기에 평소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감동 선로를 새롭게 놓아주고 공연에서 누리는 부대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도록 미세한 부분을 신경 쓰는 문화정책으로 진화하면 더욱 박수받지 않을까.

솔직히 우리 것, 우리 문화, 우리 전통, 우리 예술을 키운다고 정부나 자치단체가 말은 하고 있지만 아직도 남의 것에 쏟아주는 정책과 관심에 비하면 부족하고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까지 국악이나 대중예술이 서양에서 들어온 오페라와 발레, 교향악, 비엔날레 등에 비하여 우월하게 더 우아하게 더 고급하게 인식되어 대접받았다고 볼 수 있는가. 예술에 우열이 없다지만 정책적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최근에 국악과 타장르의 혼합이 이뤄져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각 장르마다 그들만의 잔치였던 것 아닌가 싶다.

장르의 경계가 없는 시대의 예술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새로운 창작으로 뭉친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이끌어 주는 연주공간과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길 바란다. 전주객사 풍패지관이나 광주전통문화관이나 연주자와 관객은 아직도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