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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무더위를 염천(炎天), 혹은 염제(炎帝)라고 한다. 혹독한 겨울 추위는 동장군( 冬將軍)이라 부른다. 더위나 추위를 제왕이나 장군으로 의인화 한 것이다. 제왕이나 장군은 일반 백성들에게 힘센 존재, 무섭고 두려운 존재다. 더위나 추위가 얼마나 무섭고 견뎌내기 힘들었으면 제왕이나 장군에 비유했을까? 마침 민선 8기와 함께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문득 염제와 동장군이 떠올랐다.
염제(炎帝)는 고대 중국의 불의 신이다. 전설에 나오는 고대의 제왕(帝王)으로 화덕(火德)으로 나라를 세웠다. 성은 강씨(姜氏)고 호는 열산씨(㤠山氏), 혹은 여산씨(厲山氏)다. 강씨의 시조신이기도 하며 태양신으로 받들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농사의 신으로 알고 있는 신농(神農)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양족(羊族)을 대표하는 나라를 세운 신농은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치고 의약을 만들어 의농(醫農)의 시조로 불리기도 하고 농사의 시조로도 불린다.
신농이 염제라는 칭호를 얻은 것은 그가 남방의 불(火)의 기운으로 제왕이 됐기 때문이다. 불은 오행에서 남쪽을 의미하며 붉은색으로 표현한다. 사방신(四方神) 가운데 남쪽에 주작(朱雀)이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다. 주작은 ‘붉은 새’라는 뜻이고, 여기서 ‘새’는 ‘해’와 같은 의미다. 하여 주작은 ‘붉은 해’, 즉 제왕을 뜻한다는 해석이다. 신농이 불을 다스리는 제왕, 즉 염제로 불린 까닭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각 지역에 따라 불의 신으로 받들어지는 신들이 많았다. 전국시대 말 오행설(五行設)이 유행하면서 흩어진 신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불의 신들은 염제(炎帝)라는 이름으로 통칭했다.
염(炎)은 불을 뜻하고 제(帝)는 임금, 천자(天子), 하느님의 의미를 포함한다. 천(天)은 하늘과 하느님, 임금, 제왕, 천자의 뜻을 모두 갖고 있다. 제(帝)와 천(天)이 엇비슷한 지위를 가졌다. 몹시 무더운 여름 날씨를 염천이라 부르거나 염제라 부르거나 같은 의미다. 여름 무더위가 호환 마마나 불량 비디오와는 비견할 수 없을 만큼 무섭고 두려운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반면, 겨울 추위는 동장군이라 부른다. 동장군은 혹독한 겨울 추위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한 것을 두고 영국 언론에서 ‘general frost’라고 표현한 것을 일본에서 ‘동장군’으로 번역하면서 일반화됐다. 60만 대군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점령했던 나폴레옹이 결국 러시아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후퇴했다니, 동장군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더위나 추위 모두 서민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다만, 염제나 동장군의 예에서 보듯 겨울 혹독한 추위보다 여름 더위가 더 무서운 존재였던 것 같다. 제왕은 장군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말이다.
이번 여름은 염제의 위세와 함께 민선 8기 단체장들이 일제히 찾아왔다. 지난 1일 저마다 취임식을 열고 염천 무더위를 시원하게 해주겠다는 듯 앞으로 4년 동안의 청사진을 밝혔다. 언론 보도를 보면 변화와 혁신, 개혁, 뭐 이런 단어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 듯싶다. 좋은 말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또 지향해야 할 바다.
하지만, 변화와 혁신은 구호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단체장이 아무리 앞장서 외친다 한들 공직사회 전체가 함께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그들에게 단체장은 그저 염제나 동장군일 뿐이다. 그동안 무수한 실패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지자체의 변화와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공무원이 개혁의 대상이자, 주체이고, 동반자여야 한다는 점이다. 공무원 따로, 단체장 따로 식으로 대상과 주체가 분리돼 동반자가 되지 못하면 그 개혁은 도루묵이 된다.
단체장들이 앞다퉈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는 것은 이를 통해 공직사회 전체가 더 헌신하고 더 많이 봉사해 시민이, 도민이, 군민이 민선 7기 때보다 더 행복하고 더 잘 살게 하겠다는 다짐이라고 나는 믿는다. 동장군도 아니고 염제는 더더욱 아닌, 오직 민심만을 두려워하고 받들겠다는 약속이라고 또한 믿는다.
답답하고 짜증 나는 소식만 들려오는 2022년 대한민국의 여름, 부디 광주전남이라도 염천 무더위를 날려버리는 시원한 소나기 같은 단체장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글=이종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