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송의 그림이야기> (32)빛과함께 하는 한국인상주의 서광 '오지호 화백'

<구송의 그림이야기> (32)빛과함께 하는 한국인상주의 서광 '오지호 화백'
  • 입력 : 2022. 07.11(월) 07:00
  • 구송 임채경
[국민생각] 이번회엔 지역을 넘어 한국화단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오지호 화백을 소개 합니다.

오지호 선생(1905~1982)은 구한말 보성군수를 지낸 오재영의 막내아들로 화순 동복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군수를 지냈으며 어머니 집안이 옥과에서 부유한 지주 집안이었기에 어려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부친이 기미년 31만세 운동과 고종 장례를 보고 내려온 뒤 갑자기 자결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항구, 1972, 캔버스에 유채, 37 x 45 cm
전주고보를 거처 휘문고보에 편입한 오지호 선생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을 만나게 되고, 화가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한국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1918년 동경 미술학교 졸업)의 작품을 보고 강력한 색채와 빛에 매료 되면서 부터 입니다.

고보 3학년때 광주 갑부 지용현의 딸 지양진과 결혼한 오지호 선생은 경성고보 김주경, 중앙고보 김용준 등과 함께 그림 공부를 하며 동경 미술학교 유학의 꿈을 키웠던 것입니다. 1차에는 낙방하여 가와바타 화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한 후 이듬해에 동경 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오지호 선생은 유학 동안 동경미술학교의 세잔으로 불리우며 한국의 빛과 자연을 그리며 인상주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작품의 근간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인상파적인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화면을 구성하며 전원 풍경과 빛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습니다.

선생은 ⌜김주경, 오지호 2인 화집⌟을 국내 최초로 컬러 화집으로 발행하여 우리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였으며, 그림에 대한 이론도 확고하여 “피카소와 현대 회화”라는 글을 발표하며 예술논쟁을 시작하였습니다. 추상 그림을 그리던 강용운 선생과 “구상회화 선언”을 발표, 1959년 당시 전남일보를 통해 수차례에 걸쳐 지상 논쟁을 한 것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1948년 광주에 정착한 오지호 선생은 조선대미술과에 재직하며 지역 미술발전에 지대한 노력과 공헌을 하게 됩니다. 지역 미술계에 너무나 커다란 영향력을 미침 으로써 이 지역 미술이 구상의 아류에 묻히게 되는 폐쇄성을 가져오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어찌 됐든 지역 미술사와 한국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오지호 선생님의 예술세계는 빛과 함께 하는 한국 인상주의의 서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생님의 작품세계를 정리하고 돌아 볼수 있는 기회가 새로이 주어지고 또 연구할수 있도록 하는 미술관이 이지역에서 찾아 볼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일 입니다. ‘예향 광주’라는 수식어가 무색하다 못해 어쩌면 예술을 파괴하는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지역의 소중하고 자랑스런 예술마저 간직하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흩어져 가는 현실을 볼 때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오지호 선생님의 작품도 국립현대 등으로 흩어져 있는데 어떻게 하든 다시 모아 오지호 미술관이 설립되어야 하는 것 입니다. 대전 이응노 미술관, 통영 전혁림 미술관, 수원 나혜석 미술관 등이 자리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이 지역에 문화예술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어쩌면 우리의 우상이 있어야 우리의 꿈을 그릴수 있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의 꿈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의 우상, 우리에 좌표를 설정하여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것이 지역 예술인의 목표, 꿈을 만들게 하고 그렇게 발전해야 우리의 문화예술 발전을 가져올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꿈은 가까이서 보고 경험해야 꿈을 꾸고, 목표를 설정할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역 우리 문화·예술의 상징적인 오지호, 허백련 선생님 이름이 걸린 아름답고 근사한 미술관이 곁에 있고 쉽게 접근할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