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송의 그림이야기> (34)순수한 동심을 그린 화가 백영수

<구송의 그림이야기> (34)순수한 동심을 그린 화가 백영수
  • 입력 : 2022. 08.08(월) 10:45
  • 구송 임채경
‘가족’ 캔버스에 유채53×65cm.1982
[국민생각] 이번 회엔 우리 지역 서양미술의 원로 백영수(1922~2018) 작가를 소개하려 합니다.
백영수 작가는 수원에서 태어나 2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해방 직전 여수를 거쳐 목포에 정착하여 학생을 가르쳤던 우리 지역 1세대 서양화가 중 한분 이십니다.

작가에 처음 관심을 같게 된 것은 이 지역 작가에 대한 공부를 하다 이 지역 서양미술 원로 작가임에도 우리 기억에 전혀 없으며, 전혀 알려저 있지 않기에 찾아보게 되었던 것이 2009년경 이었던 것 으로 기억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찾아 볼수록 재미 있고 흥미로운 이 시대의 작가 입니다. 또 한 작품을 보면 아주 단순하며 소박하고 마치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소박함 그 자체를 보는 듯 합니다.

작가는 태평양 전쟁이후 일본에서 귀국하여 여수를 거처 목포로 오게 됩니다. 목포의 목포여중 전신인 목포 고등여학교에 근무하며 목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누드논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는 신문화의식과 전통보수주의 예술의 격돌이라 할수 있는 누드 작품에 대한 뜨거운 논란이 그 것입니다.
이는 당시 백영수 선생과 친했다고 알려진 같은 학교 가사 선생을 모델로 한 작품이라는 소문이 확대돼 퍼지면서 논란이 확산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목포의 여류 소설가 박화성과 서양화가 김동수, 문인협회장을 지낸 차재석 등이 신문을 통해 논쟁을 벌이는 사건으로 까지 확대 되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하여 작가는 목포 고등여학교를 떠나게 되고 마침 조선대학교 미술과 개설을 계기로 광주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광주에서도 1947년 광주여고 강당에서 개인전을 하였는데 소품이 아닌 대작전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며 지내던 중 625 동란이 발생하여 부산으로 피난 중에 신사실파 동인인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등과 만나 두 번에 그룹전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것이 신사실파와 인연을 가지게 되는 계기기가 된 것입니다. 이는 백영수 작가의 단순하고 소박하며 유아틱한 예술적인 공감대가 그들과의 관계를 깊게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후 1977년 프랑스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국내엔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고, 안타갑게도 이후 잊혀 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때는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 초대전을 통하여 였던 것입니다. 작품에 나타나는 타원형의 고개 젖힌 얼굴과 유아틱한 어린아이의 순수함에서 평화와 자연스러움을 넘어선 영혼의 자유를 느낄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 사랑을 넘어선 인간사회의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인류애적 사랑과 행복을 그려낸 것입니다.
초기 작품에서는 약간 어두운 갈색톤이 보이나 점차 화사하고 청순한 파스텔 톤으로 변화되면서 더욱더 청순하며 화사한 행복을 그려 낸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국에 대한 향수와 조국의 자연속에서 느낄수 있는 맑고 푸른 하늘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 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그리움이 그를 조국으로 부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조국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순수한 그리움이고 행복이며 어쩌면 동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순수함이 사라지고 푸르고 청순한 하늘이 오염되는 현실을 볼 때 안타깝고 서글프다는 생각도 듭입니다. 공인들 마저도 자기만의 사리사욕에 끼리끼리만 배 불리려는 담합과 카르텔이 사회 속에 채워져 가는 것을 볼 때 그림속 타원형의 고개젖힌 유아틱하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사랑과 행복을 느끼고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는 삶속으로 우리를 되돌아 보길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슴속에 잠자고 있는 인류애적인 사랑과 봉사 정신이 깨어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