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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퇴직을 하고 운이 좋아 얼마 동안 일상의 삶을 영위할 수입을 누리고 있다. 주변 퇴직한 친구나 동료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다행으로, 다른 한편으론 아직 일터에 나가야 하는 부담도 느낀다.
대중교통요금을 못 낼 정도의 살림살이가 아님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3년 후면 현행법상 지하철를 공짜로 타는 나이 속칭 ‘지공선사’가 된다. 그 때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혹시 그 때까지 현역으로 있다면 대중교통요금은 내고 다녀야지 다짐하다가도 청구서를 볼 땐 살짝 갈등(?)이 인다. 거기서 몇 만원이라도 줄여야 다른 부문에 여유가 있을 텐데~. 결심이 흔들리기도 한다.
요즘 지하철 적자 문제와 노인 무료요금제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요금제 도입 역사부터, 공공부문 적자 원인이 무엇인지 등등.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쪽이 맞는 것 같고, 저 얘기를 들으면 저쪽이 맞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개혁논자가 됐다가, 현상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 보수주의자가 되어 있다. 좌우를 넘나들다 아직은 내 문제가 아니야 하고 잊어버리기로 한다.
기억 속, 논쟁의 중심에 두 정치인 있다. 한 분은 2011년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 실시했다 시장자리에서 물러났던 그분. 다른 한 분은 중앙정치를 하다 하향하여 도지사를 맡았고 당시 서민들 바램을 뒤로하고 고철덩이(?)라며 진주의료원을 폐쇄했던 그 분이다. 그 결과 도민들은 코로나 국면에 지역 공공의료기관 부재로 순천 의료원 등 타향(?) 신세를 지게 됐다.
이웃사촌이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 지역민들은 100여년 역사의 권역 내 공공의료기관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터다. 현재도 광역시장을 맡고 있는 그 분은 아직도 보수의 첨병을 자임하는지, 아님 중앙정치의 미련을 못 버렸는지 낡은 보수의 정책 소견을 연일 쏟아 내며 뭇 언론을 장식한다.
2000년 초반 광주 동구보건소에 근무할 때다. 시 외곽에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고 젊은 세대들의 이전 러시가 이어졌다. 반면 도청 이전으로 동구는 도심 공동화에 횝싸였다.
젊은 층이 빠져 나간 동구는 고령층이 절대 다수인 區가 되었다. 당시 노인층이 동구 잔류를 선호하는 이유를 고민하던 나에게 멋진 답을 준 현자(?)가 있었다.
답은 이 것 이었다.
첫째, 동구는 구도심으로 여전히 대중교통이 발달 돼 있고, 자동차 없이 조금만 걸어가도 시내에 다다를 수 있다. 둘째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두 곳의 대학병원에다 병의원이 절대다수인 동구가 노인들에게 잇점이다.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정도만 되도 노인들이 동구에 머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요즘 광주광역시 지하철 2호선 공사가 한 참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광주시 재정이 그렇게 튼튼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주라고 요금 논쟁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런 논쟁이 있을 때 지하철 요금 문제도 개선되야 겠지만 꼭 이런 식의 논의가 적합한지 곱씹어 볼 일이다.
토론과 논쟁은 할 수 있지만 좁은 시야로 접근, 무리한 결론을 내리면 제2의 무상급식논쟁, 진주의료원 사태를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 문제는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보건 전문가들은 의료재난이나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의 지역(區) 간 불균형’, 시민들의 보건의료를 ‘책임질 공공의료기관’이 없다는 점 등을 심각하게 지적한다.
전국 광역시에서 공공의료기관이 없는 3곳 중 한 곳이 광주광역시다. 기왕에 비교적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서울은 차치하더라도, 일찍이 지역 공공의료기관이 있는 부산과 인천 등은 제2시립의료원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늦게나마 광주도 코로나 국면을 겪으며 공공의료기관 필요성을 절감, 시립의료원 설립 조례까지 만들고 열심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아직은 진척이 있다는 반가운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코로나가 진정 국면이 되니 잊혀져 가는 게 아닌 가 우려가 인다. 살아가면서 망각이 필요하지만 망각이 가져다 준 현재가 다가올 미래에 심각한 재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앞날을 도모해야 한다.
유통이나 물류 혁신도 중요하고 로봇산업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생명과 건강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미래를 담보해 낼 수 없다.
의료원 문제는 행정절차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치의 영역이기도 한다. 기존의 예타 접근 방식 만으론 편익을 쉽게 계산 할 수 없다.
그런의미에서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형의 편익을 담아내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럴 때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한데 아직은 보이지 않으니 안타갑다.
수 년 내 다가 올 신종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광주광역시립 의료원 설립문제를 뒷전으로 미뤄 둘 일은 결코 아니다.
/글=박형철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