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주의 '역지사지'> 정율성 대 정율성

<이종주의 '역지사지'> 정율성 대 정율성
  • 입력 : 2023. 11.06(월) 07:00
  • /글=이종주
[국민생각] 느닷없이, 그야말로 느닷없이 다툼이 시작됐다. 광주시가 추진하고 있던 ‘정율성 역사 공원 조성 사업’에 국가 보훈부가 ‘빨간색’ 카드를 내밀며 ‘안돼’라고 외치면서 난타전이 시작됐다. 이른바 ‘정율성 대 정율성’의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광주시는 이 뜬금없는 레드카드가 당혹스러웠을 터다. 상대가 힘과 권한을 가진 국가 보훈부, 그것도 장관이 직접 나서니 더욱 황당했으리라. 그렇다고 ‘네, 알겠습니다’ 할 수도 없는 일. 상대가 비록 골리앗이라 할지라도 광주시는 시민의 힘에 의지한 다윗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성경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절대 물러설 수 없었으리라.

‘정율성 대 정율성’ 혹은 ‘2023 다윗과 골리앗의 격투’. 눈이 시리게 푸르른 가을 하늘을 치어다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이때 뜬금없이 시작돼 격화하는 이 싸움은 도대체 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중앙의 힘센 일부 언론이 한쪽 편에 서서 펜으로 일갈하거나, 마이크 앞에서 침을 튀기며 광주를 나무라는 것을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을 하는데 충분하지 않았다. 본디의 정율성을 다시 공부하고, 광주시의 정율성과 보훈부의 정율성을 모두 만나봐야 이 기이한 싸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겠다 싶었다.

정율성은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부은’이었는데, ‘선율로 성취하겠다’라는 뜻을 담아 율성(律成)으로 개명했다. 1929년 전주 신흥학교에 입학했으나 의열단 가입을 위해 1933년 중퇴했다. 이후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수학했다. 1938년 중국 공산당 거물인 저우언라이의 양녀 당쉐쑹(정설송)과 연애를 하다 1941년 결혼했다. 당쉐쑹은 남편이 의열단 소속으로 비밀공작 활동을 하며 독립운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1939년 중국 공산당에 정식 가입했다. 같은 해에 팔로군행진곡을 작곡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로 지정된 곡이다. 연안 팔로군 본부에 있다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북한으로 갔다. 북한에서 ‘해방행진곡’,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북한 정권을 찬양한 다수의 곡을 만들었다. 6·25 전쟁 때는 북한군 군관 신분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해 8월 중국으로 돌아갔다.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 공산당 당적도 회복했다. 1976년 12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수많은 명곡을 만들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360여 곡을 작곡했다.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곡이 다수다. 중국 현대 3대 작곡가로 꼽힐 뿐 아니라 세계적 작곡가로 손꼽힌다.

역사에 존재하는 정율성의 대략적인 행적이다. 그런데 광주시가 바라보는 정율성과 보훈부가 보는 정율성은 전혀 다르다. 피 터지게 싸우는 이유다.

보훈부가 바라보는 정율성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기를 북돋운 ‘팔로군행진곡’과 ‘조선인민군 행진곡’ 등 군가를 작곡한 인물이다. 북한과 중국에 충실하게 복무한 공산주의자다. 따라서 기념 공원 조성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 기념사업 중단과 이미 설치된 흉상 등 기념시설 철거를 권고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시정명령 발동까지 예고했다. 서슬이 퍼렇다.

보훈부의 레드카드에 광주시는 항일운동가이자 세계적 음악가인 정율성과 관련한 기념사업은 수십 년 동안 진행해 온 것으로 이 시점에 갑자기 문제 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수십 년 동안 한·중 우호 교류의 상징처럼 여겨지며 별다른 논란이 없었고, 심지어는 노태우 정권 때 시작돼 박근혜 이명박 정부 때도 국비를 받아 추진해왔다고 반박한다. 반드시 예정대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결기를 굽히지 않고 있다.

광주시와 보훈부가 나름의 논리를 앞세워 ‘정율성 대 정율성’의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독립운동가이자 세계적인 음악가인 정율성과 ‘조선인민군 행진곡’이나 ‘팔로군행진곡’을 만든 작곡가 정율성은 한 몸이다. 수십 년 동안 몰랐다가 이제 막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아니다. ‘과거’ 정율성의 친북 친중 행적이 ‘현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지도 못한다. 하루빨리 이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는 게 국민과 광주시민에 대한 예의다. 해법도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그것도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다. 바로 ‘국민은 늘 옳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씀이다. 광주시와 보훈부가 논쟁을 멈추고 광주시민에게 물어보면 된다. 시민은 늘 지혜롭고 옳다.
/글=이종주